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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5 (00:22:29)
비가 내려 생긴 도롯가의 웅덩이에 하늘이 비추어졌다. 
땅을 차르르르 치고 내려가던 비들은 대부분이 지하수로로 미끌려 들어가 버렸지만 남은 빗물이 웅덩이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하늘이 그 안으로 들어왔다. 구정물로 보일 수도 있는 빗물이 순식간에 파랗고 하얀, 몽실몽실한 것들이 들어찬 커다란 공간으로 변한다. 
소년은 고개를 숙이고 그걸 보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소년을 쳐다보았지만 소년은 개의치 않았다. 
물론 그것이 아름다워 보고 있는 것 따위는 아니었다. 구정물이어야 할 것이 하늘 하나 비췄다고 깨끗한 것이 될 순 없다. 그것은 본래 구정물일 뿐이다. 잠깐 하늘이 물을 속이고 있는 것뿐인 것이다. 소년은 자신의 처지를 생각해 보았다. 
홈런을 맞았지만 팀이 지지는 않았다. 소년은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을 다했다. 
그는 환하게 웃어주었다. 
마음은 무겁기 그지없었지만 소년은 애써 부정했다.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난 그런 적이 없어. 아닐 거다. 
갑자기 소년의 생각에 퐁당 하는 소리가 울렸다. 태양빛을 받아 반짝한 은빛 동전이 웅덩이 안으로 굴러 들어온 것이다. 소년은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가 서 있었다. 

"안녕, 미안해. 방해했네." 
"뭘 방해했다는 거야." 
"뭐 보고 있었던 거 아냐? 아, 내 백원." 

그는 구정물 속에 손을 넣어 동전을 가져갔다. 물이 뚝뚝 흐르는 동전을 엄지와 검지로 집은 채 어떻게 할까 망설이고 있는 그를, 소년은 쳐다보았다. 동전에서 떨어지는 물방울마저 햇빛을 받아, 마치 구정물이 아니었다는 듯 빛이 나고 있었다. 그는 이내 아무렇지 않다는 듯 바지에 백원을 슥슥 닦아 주머니에 넣었다. 

"집에 같이 안 갈래?" 
"뭐?" 너랑?" 
"응. 나 너랑 할 얘기가 많거든. 그 경기 진짜 멋있었어!" 

그가 소년의 어깨에 맘대로 어깨동무를 했다. 키가 큰 그는 소년을 옆으로 내려다보았다. 소년은 그 시선이 싫었다. 갈색빛이 흐르는 눈동자와 샛노란 머리카락 색이 태양에 반사되어 눈이 부셨다. 기분이 나빴다. 마치 구정물에 어울리지 않는 구름이 다가오는 듯 기분이 나빴다. 
그는 연신 기분이 좋아 보였다. 

"홈런 하나가 아쉽긴 하지만 말야. 그거 말고는 진짜 완벽한 피칭이었는데." 
"…" 
"사실은 나, 이번 경기 꽤 자신이 없었어." 
"뭐?" 

거짓말을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언제나 자신감에 가득차 있었다. 
자신 없다는 말은 세상에서 태양에게 제일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다. 소년은 얼굴을 찡그렸다. 그는 평소에 보이지 않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계속했다. 

"그래서 내가 그 경기 안 나간 거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손을 다치는 순간 멍청하게도 이런 생각이 드는 거야. 아 이제 나 안 나가도 되는구나 하고, 이런 생각, 에이스로서 실격이지. 투수는 내 뒤에 친구들이 있다는 생각과 이 경기엔 나뿐이라는 생각을 동시에 가져야 하는데." 
"…" 
"그래서 감독이 널 선택했을 때 널 응원했어. 나 대신 제발 잘해달라고 말야. 근데 니가 진짜 멋지게 피칭하는 거 보니까 내가 부끄러워지더라구. 갑자기 선택된 너는 저렇게도 열심히 하는데 난 내 역할을 피하기만 했으니까. 미안해. 너한테 책임을 전가해서. 사실 손등 부러진 것도 다 내 해이함 탓이었던 거겠지." 
"…" 

그는 다시 씩 웃었다. 

"그냥 그랬다고! 너, 멋있더라. 나 먼저 갈게!" 

소년은 그의 등 뒤를 바라보았다. 
하늘은 너무 높이 떠 있어서, 사실은 구정물 따위에는 관심도 없는 것이다. 그저 지나가면서 자신의 얼굴을 확인할 뿐 구정물이 자신을 이용해 그 더러운 모습을 감춘다는 것은 꿈에도 모르는, 그런 것이다. 
소년은 아직도 교복 주머니 안에 든 드라이버를 꺼냈다. 이미 아니라고 생각하기엔 늦었다는 것을 소년은 알고 있었다. 소년은 드라이버를 구정물 속으로 빠뜨렸다. 
이제 비도 오지 않는데, 웅덩이 위로는 작은 물방울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지난번에 이어보았습니다. 
안된다면 찔러주세요. 
2011.04.21 23:29:19 (*.56.120.221)
꿈꾸는중

안되다니요, 이어쓰셔도 됩니다.^^ 전에 쓴 글의 뒷편이군요. 그냥 쓰기도 어려운데 키워드에다가 이어쓰시기까지...대단하세요. 담담한 말투로 이야기하는 화자인 소년의 마음이 저에게 이입되어서, 꽤나 복잡한 마음이 가감없이 그대로 전달되는 느낌이었습니다. 맨 윗부분에 물웅덩이를 표현한 부분이 섬세하고 무척 예뻤습니다. 여기서 가져올 단어는 "등뒤" 그리고 "구정물"

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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