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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5 (00:22:00)
소년은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머리카락이 샛노란, 그를 발견했다. 
그가 뭐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소년은 숨을 삼켰다. 
포수와의 거리가 너무도 멀게 느껴진다. 소년은 땅을 고르고 글러브를 툭툭 쳤다. 다 잘 될 거야. 나는 할 수 있어… 하며 자신을 진정시켰다. 아직 경기하기엔 시간이 좀 남아 있었다. 문제라도 생겼는지 감독은 심판과 뭔가를 체크하고 있었다. 자신에 대한 것은 아니다. 알 수 있었다. 보고 있던 포수가 어깨 풀어라, 하면서 공을 던져주었다. 소년은 공을 받았다. 
소년은 꿀꺽 하고 침을 목으로 넘겼다. 간단한 그 동작이 너무도 힘들었다. 그는 계속 소년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깁스가 둘둘 말려 있었다. 
소년은 땅을 바라보았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이 자리는 소년의 자리가 아니었다. 그의 자리. 사고로 오른손이 골절된 그는 학교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경기에서 공을 던질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럼에도 너는 왜 환하게 웃고 있을까. 나를 보고 잘 하라며 손을 흔들고 있을까. 
티없이 환한 태양같은 얼굴로. 
심판이 돌아왔다. 경기 시작의 콜이 울린다. 소년은 발을 내딛어 마운드를 힘차게 찼다. 공이 자신의 손에서 떨어진다. 

그는 어느 모로 보나 태양 같은 녀석이었다. 
또래들보다 멀찍이 큰 키, 학교 교칙을 어겨가면서까지 기른 머리와 샛노란 염색. 야구부 차원에서나 학교 차원에서나, 여러 모로 골치아픈 녀석이었지만 공은 정말 잘 던졌다. 그건 고등학생의 공 궤적이 아니었다. 문제아이기도 했지만 어느 누구와도 사이좋게 잘 지냈다. 누구에게나 착하고 스스럼없었다. 햇빛처럼 쏟아지는 미소는 모든 사람이 기억하는 그의 모습이었다. 
소년은 그가 싫었다. 
비단 야구가 문제가 아니었다. 2인자인 게 문제가 아니었다. 그 자체로 싫었다. 언제나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 미치도록 싫었다. 소년은 음습했다. 친구도 별로 없었다. 그게 딱히 나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공 던지는 것만 좋아하며 지냈다. 그는 그런 소년에게도 친구가 되자는 손길을 내밀었다. 얼음처럼 차가운 사막의 모래가 아침이 되면 태양빛에 미치도록 뜨거워지듯, 태양은 소년에게 커다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소년은 변화가 싫었다. 이대로가 좋았다. 그 샛노란 빛이 다가오는 것을 더 이상 원치 않았다. 
흘러내린 땀을 닦으며 문득 소년은 팀 동료들을 바라보았다. 태양빛은 거기에 있었다. 소년이 잘하는 것을 응원하고 지켜본다. 앞에선 웃고 뒤에서 시기하지 않는다. 그의 응원은 진심이었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는 걸까. 소년은 그게 궁금해서 미쳐버릴 것 같았다. 시기심도, 미움도 없는 건가. 사심 없이 팀이 이기는 것에 환호하고 친구가 잘 되는 것을 기뻐한다. 모든 것을 공평하게 비춰주는 태양처럼 말이다…! 인간이라면 그럴 수 없었다. 저건 이미 태양이다. 소년은 그게 부러웠다. 부러웠다. 정말로 부러웠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는, 걸까!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타임!" 

포수가 마스크를 벗었다. 가까이 다가오는 그의 발걸음마다 지옥불이 붙어 오는 것 같았다. 태양이 걱정스럽게 자신을 쳐다보았다. 

"왜 그래, 잘 하다가. 괜찮아? 더 던질 수 있겠어?" 
"괜찮아요…" 

아직 미덥지 못하단 표정을 지으면서도 포수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소년은 기억해냈다­­ - 그가 죄송하단 말을 하며 팔을 보여주었을 때 감독이 혀를 차며 태양의 이름을 지우고 적은 이름이 누구였는지. 
손에서 떨어져나간 공이 포수의 미트로 빨려들어가지 못하고 방망이에 맞았다. 깡 하는 소리와 함께 소년은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가장 먼 곳의 외야수가 멍하니 공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하얀 공이 햇빛을 가르고 관중석으로 넘어가는 것을 소년은 보았다. 
소년은 또 기억해냈다 - 아무도 없는 자전거 보관소에서 그의 자전거 브레이크를 망가뜨려 놓은 건 또 누구였는지. 
2011.04.21 23:28:19 (*.56.120.221)
꿈꾸는중

꽤 솜씨있는 작가의 프롤로그부분을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엔터를 치는 부분이 딱 알맞게(?) 되어있어서 읽는것도 수월했고, 그 장면을 머릿속에서 그려보는것도 쉬웠어요. 화자인 소년의 모습이 얼마전 읽은 히가시노게이고의 '악의' 라는 책에 나오는 인물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열등감. 그것이 자라나 이유없는 악의로 사건을 일으키는데, 짧은 글에서도 그런 마음이 잘 나타난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 가져올 키워드는 '자전거' 

2011.04.21 23:28:32 (*.56.120.221)
유즈

어디에나 있을 법한 시기와 질투, 악의와 열등감이 잘 조화되어 일상속에서 범접하는 비일상이라는 느낌을 받게 합니다. 적절한 가해자와 피해자의 위치, 그 위를 덮고 있는 평화로운 일상, 그 위에서 전개되는 가해자의 죄책감과 흐름이 적절하게 조화되면 정말 재미있는 글이 될 것 같습니다. 

2011.04.21 23:28:45 (*.56.120.221)
Nora

학원물의 좋은 점은 십대 아이들의 복잡하지만 단순한 감정을 스스럼없이 독자에게 드러내보여도 그것이 유치함이 아니라 솔직함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데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글도 그랬습니다. 솔직함이 와닿았어요. 차분하고 담담하지만 십대 정서의 우울함이나 격렬함을 동시에 말하고 있어서, 그런 감성적인 측면이 부각되었습니다. 그것을 좀 더 세련된 방식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찾는다면 더 좋은 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여기서는 '아침'을 고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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