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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5 (00:20:55)
그는 꿈을 꾸었다. 꿈 따위 꾸지 않을 정도로 옅게 선잠을 잤다고 생각했건만 오히려 비정상적일 정도로 허무맹랑하고 선명한 꿈을 꾸어 버렸기에 깨어난 그는 기분이 굉장히 나빠져 화장실에서 아침에 먹었던 빵을 모조리 토해 버렸다. 식은 땀을 흘리며 위액이 나올 때까지 토해내자 머리쪽으로 피가 몰려 현기증이 올라왔다. 화장실 바닥에 주저앉아 몇 번 호흡을 가다듬고 진정이 되자 다시 꿈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사람이 살지 않는 저택 안으로 우연히 공이 굴러들어가 별 생각 없이 공을 주우러 갔던 13년 전, 여름. 잔디는 손질되지 않아 거칠게 메마른 흙냄새가 물씬 피어올랐고 정원 왼편에 있던 커다란 나무에서 녹색의 얼룩도마뱀이 이쪽을 바라보며 혀를 내두르던 것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일체의 긴장감도 없이 실내로 들어갔을 때 가장 먼저 알아차린 것은 의외로 후각보다 시각이었다. 눅진하게 썩어버린 나무냄새에 뒤덮여 나는 비릿한 냄새가 피냄새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은 시각이 커다란 베낭을 인식한 후였다. 주인이 있을까 싶어 조심스럽게 바닥을 밟으며 커다란 창문 맞은 편의 방으로 들어간 어린 날의 그는, 금이 간 유리 앞에서 마치 탐험가 같은 모습으로 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 그가 남자라는 것은 어깨 폭이나 거친 손으로 알 수 있었고, 가방이 그의 것이라는 것은 베낭과 같은 색의 얼룩이 그의 옷에 물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얼굴이 통째로 도려나가 있었다. 머리가 없었다. 커다랗고 짧게 자른 머리가 있어야 할 위치에는 목뼈가 드러난 채 단면이 햇빛에 비추어져 명백하게 부패되고 있었다. 
  
그는 공을 찾으려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방에서 허겁지겁 뛰어나오다가 길을 잃었다. 바깥에서 보기에도 커다랗던 담쟁이덩굴이 점령한 대저택은 아직 어린 꼬마가 길을 잃기에는 충분하고도 남았다. 높고 높은 계단을 달려 올라갔다. 빛이 그를 내리쬐고 있었고 이 빛 끝에 출구가 있을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달려갔다. 아이다운 단순하고 논리적이지 못한 발상이었다. 그리하여 애써 달려간 가장 윗 다락방의 끝에는 침대 위에 그 시체의 머리로 보이는 것이 흰 시트를 물들이며 곱게 놓여 있었고 아이의 장난감이었던 핑크색의 작은 공은 한 여자의 손에 들려 있었다. 가느다랗고 흰 손가락 사이에서 이리저리 굴려지던 공은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고, 아이는 그 공을 잡고 뒷걸음질 쳤다. 여자는 그 자리에서 웃었다. 소리를 내지 않고, 옷자락이 스치는 소리조차 크게 들릴 정도로 조용하게. 그리고 마룻바닥이 삐걱거리는 소리만이 그녀가 움직이는 동선을 알려주고, 그녀는 한 발자국 그에게 다가갔다. 서로의 얼굴과 눈동자를 명확하게 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왔을 때, 그녀는 그에게 물었다. 

넌 누구니? 


대답할 겨를도 없었다. 그는 그 방을 벗어나려 몸을 돌려 뛰어나갔다. 그러나 그 이후로 기억하는 것은 그가 강한 힘에 이끌려 그 방의 창문에서 추락했다는 것이었다. 무엇이 그를 추락시켰는지는 기억하지 못하노라고 진술했다. 그러나 단순한 타박상이라고 생각했던 목 뒤의 손톱자국이 흉터처럼 남았기에 그는 그 기억을 쉽사리 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흉터가, 13년이 지난 지금, 나날이 빨갛게 부어오르고 있다. 그는 다시 한번 그 자리에서 깊게 모든 것을 토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토해지지 않았다. 흰 시트 위에서 커다란 원을 그리며 피로 물들어간 중심에는 탐험가의 머리가 있었다. 그 머리는 

그의 아버지였다. 
2011.04.21 23:26:17 (*.56.120.221)
꿈꾸는중

공포영화의 한 장면처럼 너무나도 선명하게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무섭고 슬프고, 단어 하나하나를 읽을때마다 섬뜩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눅진한 냄새, 그녀가 움직이는 동선을 알려주다, 커다란 원을 그리며 피로 물들어가다. 표현이 마음에 들어요. 마지막 반전까지도 소름이 끼치네요. 여기서 택할 단어는 '아이'

2011.04.21 23:26:33 (*.56.120.221)
wyvern

마치 잘 만들어진 스릴러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장면을 생각할 때마다 머릿속에서 효과음이 들리는 것 같아요. 이 글 내용만으로도 완전한 글 같기도 하고 아주 긴 글의 도입부 같기도 합니다. 몰입도가 굉장한 글이네요.

2011.04.21 23:26:51 (*.56.120.221)
Nora

오감 중에서도 시각이 가장 많이 자극되는 것 같은 글이네요. 환상소설 같다고 생각했는데 마지막 전개를 보면 스릴러 같기도 한 느낌입니다. 개연성이 느껴졌다면 더 재미있었을 듯합니다. 스토리가 있는 글이니만큼 전개가 되면 될수록 더 강점을 많이 보이게 될 글이라고 생각됩니다. 잘 읽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단면'을 고르겠습니다. 

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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