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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5 (00:18:29)
오빠. 난 지금 오빠가 걷던 길을 걸어가고 있어. 

오빠의 어머니라는 사람이 찾아왔었어. 지도책을 하나 내밀더라. 행방불명된 오빠의 단서를 찾으려고 방을 뒤지다가, 평소 갖고 다니던 지도책에 씌어진 내 집주소를 봤나봐. 

하지만 나는 오빠가 사라졌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는걸. 오빠는 항상 그렇게 역마살 낀 사람처럼, 배낭 하나만 매고 훌쩍 떠나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가 몇 달에 한 번, 일 년에 한 번씩만 나를 찾아오곤, 내 방에 앉아서도 밤 하늘만 쳐다보곤 했어. 그래... 저 너덜너덜한 지도책도 기억나. 오빠가 자주 다니는 길마다 지저분하게 볼펜으로 선이 그어져있었지. 오빠가 보는 풍경을 나도 보고 싶다고, 같이 떠나자고 졸라대는 내게 말없이 웃음만 짓곤, 다음날 아침이 되면 사라져있곤 했지. 

그런데 이제 와서 이 지도책이 오빠를 찾아가는 열쇠가 될 줄이야... 마치 오빠가 날 부르기라도 하는 듯이 말이야. 이 길을 따라가다보면 오빠를 만날 수 있을까? 하지만 주변엔 아무 것도 없어. 지도책에 그어진, 오빠가 걸어갔던 길을 이제까지 따라왔지만, 아무 것도 없어. 허허벌판뿐이라서 하늘만 쳐다보게 돼... 

이것도 오빠답다고 해야 하나? 별을 그렇게 좋아하던 사람. 항상 이렇게 별을 바라보면서 정처없이 걸었던 걸까? 나와 함께 있으면서도 밤 하늘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사람... 서로 마주볼 수 없다면, 차라리 같은 하늘을 바라보면서라도 곁에 있을 수 있을까? 

바람이 차다.. 어디에서라도 쉬어가고 싶어. 다리도 아프고... 손가락이 아파. 나무로 된 낡은 다리 난간을 잡았더니 가시가 박혔나봐... 그래도 이 다리를 건너고 나면 사람 사는 곳이 나올 거야. 오빠도 가끔은 그렇게 자잘한 상처들을 입고 다리가 부은 채로 찾아와, 쓰러지듯이 누워 잠들고는 했지. 정말 제멋대로야. 이젠 멋대로 어디로 사라져버린 거야... 

물병자리가 선명하게 보이네. 오빠가 내게 해줬던 얘기 중에 반쯤은 별자리 얘기였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가 무슨 얘기를 하고 싶어하는지는 관심도 없었고, 그저 자기 하고 싶은 얘기만 하고, 하고 싶은 대로만 행동하는 사람이었어. 오빠가 나랑 눈을 맞추는 건 같이 잘 때 뿐이었지... 내게서 떠나서는 누구와 어디에 머물렀을까? 이 지도에 찍혀진 수많은 점처럼, 오빠에게 있어서 나는 잠시 쉬어가는 수많은 여자들 중 하나였을 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이렇게 고생해서 오빠를 찾아나서는 내가 바보같이 느껴져. 

아... 

아니야. 그게 아니었어. 

바로 여기 있었구나, 오빠. 오빠는 역시 나를 불렀던 거구나. 나는 오빠에게 있어서 특별한 여자였던 거야. 그렇지? 
바보같이, 이렇게 별을 보며 걷다가 부서진 난간 사이로 떨어졌던 거구나, 나처럼... 

지금 오빠가 보여. 무거운 배낭을 메고 강 바닥에 가라앉은 오빠가. 지금 곁으로 갈게. 이번에야말로 나를 바라봐주겠지...? 오빠가 나를 불렀으니까. 이젠 영원히 떨어지지 않을 거야...... 하지만 왜 그런 꼴이 되고서도 그 눈은 하늘만 바라보고 있는 거야!
2011.04.21 23:21:00 (*.56.120.221)
꿈꾸는중

문체라는게 이런거구나, 필력이라는게 이런거구나...가 느껴지는 글. 혼잣말, 라임으로 술 술 풀어내는것 같은데도 끊어짐 없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그리고 짧은 내용 안에 꽤나 오랜 시간의 숨겨진 이야기가 있어서 재미있었다. 특히 마지막부분은 먹먹함. 이런게 느껴질 정도. 여기서 가져올 키워드는 '물병자리'

2011.04.21 23:21:22 (*.56.120.221)
유즈

혼잣말이긴 한데 풍경이 명확하게 그려져서 대화하듯 읊조리는 느낌이 좋다. 별자리를 중심을오 추억을 하면서 기억과 추억이 혼재하는 느낌이 너무 좋다. 여기서 가져올 키워드는 베낭.

2011.04.21 23:21:54 (*.56.120.221)
Wyvern

이야기하는 아련한 느낌이 좋은 글입니다. 마지막 부분을 보면 비극인데도 불구하고 아름답게 풀어나가는 것이 좋네요. 마지막의 느낌표는 처음엔 여기서 글이 끝나기엔 어색한 것 같고 말줄임표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으나 다시 생각해보면 느낌표로 끝냈기 때문에 결말이 진부해지지 않았다는 느낌도 드네요.

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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